일상이야기/일상사주이야기

기신을 이기지 않고 견디는 법

하루끝에용기 2025. 5. 2. 00:33

기신이라는 단어를 처음 들었을 때, 나는 그것을 이겨내야 하는 무엇으로만 받아들였다.
사주에서 말하는 ‘기신(忌神)’은 나에게 해가 되는 기운이니,
그것이 들어오는 운에서는 분투하고, 벗어나야 한다고 믿었다.

하지만 살아보니 그렇지 않았다.
기신은 단지 외부의 기운이 아니라, 내 안에 있는 무언가를 자극하고 끌어올리는 작용이었다.
그리고 그 자극이란 건, 피하거나 없앨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기신 대운을 보내는 동안 나는 많은 것을 잃었다.
사람도, 돈도, 마음도.
이유 없이 꼬이는 시기였고, 한 가지가 무너지면 줄줄이 무너졌다.
그럴수록 더 애썼고, 애쓴 만큼 부서졌다.
무언가를 바꾸려 할수록, 바꾸지 못하는 현실에 분노하고 좌절했다.

그런데 어느 날 문득, 생각이 바뀌었다.
‘이걸 꼭 이겨야만 하는 걸까?’
나는 사주 속 기신을 적으로만 보고 있었지만,
어쩌면 그것은 나에게 겪어야 할 시간을 알려주는 신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신을 이긴다는 것은 단순히 상황을 반전시키는 것이 아니라,
그 시간을 버티고, 견디고, 무너지지 않고 살아내는 것일지도 모른다.
눈에 띄는 성취는 없었지만, 나는 여전히 여기 있고, 내 안의 감정은 그때보다 훨씬 조용해졌다.

기신 운에서 할 수 있는 가장 단단한 선택은,
어떻게든 ‘좋은 운처럼’ 꾸며내는 게 아니라
‘이 시기엔 내가 이런 기운을 겪고 있다’는 걸 인정하고,
그 기운이 빠져나갈 때까지 자신을 무너뜨리지 않는 것이다.

삶이 가르쳐준 건 이거다.
기신은 내게 뭔가를 빼앗는 것 같지만,
사실은 그것을 통해 무엇이 진짜 필요한지,
어디까지가 내가 지켜야 할 선인지를 알려주는 과정이었다.

그래서 나는 이제 이기려 하지 않는다.
기신이 내 삶에 찾아오면, 그 기운을 무겁게 껴안고 견딘다.
내가 할 수 있는 걸 하되, 안 되는 걸 억지로 쥐지 않는다.

사주는 늘 균형을 말한다.
기신이 강할 땐 용신은 작아지고,
그럴수록 나는 작고 단단한 일상 하나에 집중하려 한다.

밥을 잘 챙겨 먹고, 몸을 따뜻하게 하고,
괜찮지 않아도 너무 괜찮은 척은 하지 않는다.
그렇게 견디는 시간이 쌓이다 보면,
기신이 물러가고 나서야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있다.

이기지 않아도 된다.
그저 오늘 하루, 무너지지 않고 지나가면 된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