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이야기/일상사주이야기

그 사람의 사주를 본다는 건, 그 사람을 안다는 착각이다

하루끝에용기 2025. 5. 3. 05:42

그 사람의 사주를 본 건,
우연이었다.
사람이 궁금해서라기보단,
그 사람과 맺어질 수 있을까를 먼저 알고 싶었다.

그러니까, 나는
그 사람을 알려고 했던 게 아니라,
내가 다칠지 안 다칠지를 알고 싶었던 거다.

이건 지금 돌아봐서야 겨우 알게 된 거다.
그땐 정말,
사주를 한 장 펼쳐놓고
그 사람의 마음을 읽을 수 있을 줄 알았다.
무엇을 좋아하고, 어떤 상처를 가지고 있고,
어디까지 내 마음을 받아줄 수 있는 사람인지.

하지만 틀렸다.
사주는 말해주지 않았다.
그 사람이 나를 피할 때의 눈빛,
대답은 했지만 마음은 없던 문자,
혼자만 계속 가고 있던 대화 속 침묵들.

그 모든 건 사주 밖에 있었다.
나는 기껏해야 그 사람의 기운, 흐름, 관계운 같은 걸 따지고 있었지만
정작 중요한 건, 그 사람이 나를 어떻게 느끼는가였는데.

그러니까 이건 애초에 방향이 잘못된 감정이었다.
사주를 본다는 건 그 사람을 해석하려는 일인데,
사람은 해석하는 게 아니라 겪는 거라는 걸 나는 몰랐다.

그 사람의 연도, 월, 일, 시를 다 알고 있었지만
그 사람의 표정 하나, 숨결 하나도
나는 온전히 이해하지 못했다.

사주가 말해준 건 틀리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충이 있었고, 원진이 있었고, 흐름이 불안정했고,
그 관계는 길게 이어지기 어려웠다고.
맞다. 결국 그렇게 됐다.

근데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나는 그 사람을 한 사람으로 사랑하지 못하고,
팔자 속 관계로, 분석의 대상처럼 다뤘다는 게
지금 생각하면 가장 큰 실수였다.

그 사람은 떠났고,
나는 사주 한 장을 남겼다.
지금은 그 사주를 다시 펼쳐보지 않는다.
보는 순간, 그 사람이 생각나니까.

그래서 요즘은 누군가의 사주를 볼 때
잠시 멈춘다.
정말 그 사람을 알고 싶은 건지,
아니면 그냥 또 내가 다치기 싫은 건지.

그 경계를 혼동하면,
사주는 사람을 안심시키는 도구가 아니라,
사람을 멀어지게 만드는 방어막이 된다.

그리고 나는,
그 방어막 속에서
한 사람을 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