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미두수

내 팔자에 친구는 있었을까

하루끝에용기 2025. 6. 11. 02:12

복덕궁과 천이궁 사이에서

어릴 땐, 늘 혼자였다. 학교 운동장에서 뛰어노는 아이들의 목소리를 멀리서 듣기만 했고, 누군가 내게 말을 걸어오면 그 순간부터 나는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몰라 얼어붙곤 했다. 어느새 익숙해져버린 건, 곁에 아무도 없는 시간이었다.

자미두수에서 복덕궁은 인간관계, 특히 나와 가까운 사람들과의 유대, 정서적 공감의 정도를 말해준다. 내 복덕궁은 비어 있거나, 혹은 기세가 약하다. 이걸 처음 해석받았을 때 나는 그저 “그래서 그렇구나” 하고 웃었다. 설명은 간단했지만, 내 삶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았다.

복덕궁이 허하다는 건 단지 친구가 없다는 말이 아니다. 인연이 쉽게 생기지 않고, 설령 생겨도 깊어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 나의 경우, 친해지기까지는 오래 걸리는데 어느 순간 갑자기 그 인연이 멀어지거나, 내가 스스로 밀어낸 적도 많았다. 겉으론 다정했지만 마음은 열지 못했다. 겉으로 웃어도 속으로는 경계하고 있었다.

그 반대편에 위치한 천이궁은 이동, 변화, 환경의 전환을 의미한다. 내가 살면서 얼마나 자주 환경을 바꾸었는지를 보면 알 수 있다. 학교도 자주 옮겼고, 일도 이직을 반복했고, 내가 발을 붙일 수 있었던 ‘그룹’은 단 한 번도 오래 지속되지 않았다. 천이궁에 든 성이 흉한 편은 아니었지만, 복덕궁과 천이궁이 서로 긴장을 이루고 있었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나는 늘 새로운 공간에서 새로운 사람들과 다시 관계를 맺어야 했다. 이전의 유대는 정리되지 않은 채 떠나보내야 했고, 누군가는 다시 내게 연락을 했지만 나는 이미 그 번호를 지우고 다른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게 미련 없는 사람이라서가 아니라, 깊은 유대를 맺는 방법 자체를 몰랐던 것 같다.

자미두수에서 복덕궁은 단순히 '친구가 많은가'를 보는 곳이 아니다. 이 궁은 내가 누군가에게 마음을 열 수 있는가, 그리고 내가 타인의 감정을 얼마나 받아들일 수 있는가를 말해준다. 다시 말해, '정서적 접촉'의 가능성이다.

내 복덕궁에는 때때로 흉성이 머물렀고, 그 시기엔 유독 인간관계가 무너졌다. 의심, 오해, 혹은 애써 쌓은 신뢰가 너무 쉽게 깨지는 시간들. 그럴 때마다 나는 “역시 나는 혼자가 편해”라고 스스로를 달랬지만, 실은 아팠다. 다만 그 아픔을 어디에 말해야 할지 몰랐을 뿐이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그런 나에게도 분명 깊은 인연은 있었다. 단지 오래 가지 못했을 뿐이다. 내 명반에서 복덕궁이 약하더라도, 일시적으로 운에서 복덕궁을 보완해주는 해가 있다. 그 시기엔 확실히 누군가와 가까워졌고, 그 기억은 지금도 남아 있다. 다만 그 인연이 계속 이어지지 못했기에, 나는 내 팔자에 친구가 없다고 단정지었던 것뿐이다.

이제는 조금씩 배우고 있다. 마음을 열기 위해선 내 복덕궁에 흉성이 있다는 사실을 탓할 것이 아니라, 그 궁이 약하다는 것을 인식하고 그 위에 노력을 덧대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을. 쉽게 흔들리는 유대라면, 천천히 단단히 묶어가면 된다는 것을.

사주든 자미두수든, 결국 우리는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의 지도를 들여다보는 것이다. 팔자에 친구가 있었냐고 묻는다면, 나는 이제 이렇게 답할 수 있을 것 같다.

“있었다. 다만, 내가 그 존재를 오래 잡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앞으로는, 조금은 달라지고 싶다.”